경북도호국보훈재단은 2026년 ‘경북 이달의 호국영웅’ 2월의 인물로 영천 출신 박재화 선생(朴載華, 1921~1950)을 선정했다. 박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는 한국광복군으로 독립전선에 섰고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인물로, 독립운동 정신이 대한민국 국군의 정통성과 호국의 역사로 이어지는 상징적 삶을 보여준다.
재단은 “한 인물의 생애에 독립과 건국, 그리고 호국의 역사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에서 박재화 선생은 오늘날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표적 인물”이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청년 독립운동가, 광복군이 되다 192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박재화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성장했다. 1940년, 선생은 중국에서 조직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항일 선전·공작 활동을 수행하며 청년들을 규합해 독립전선의 기반을 다진 조직이다.
이후 선생은 중국 중앙전시간부훈련반에 설치된 한국청년훈련반 제2기를 수료했다. 이는 향후 광복군 핵심 간부로 성장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군사훈련과 함께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고취하는 교육이 병행됐다.
1941년 선생은 한국광복군 제5지대에 배속되었고, 1942년 5월 광복군 조직 개편에 따라 제2지대로 편입됐다. 당시 광복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규군으로서 연합군과 협력해 대일 항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특히 박 선생은 한·미 연합작전인 이른바 ‘독수리 작전’ 참여를 위해 미국 전략정보국(OSS)의 특수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국내 침투 및 정보수집, 후방 교란작전을 염두에 둔 고강도 군사훈련이었다. 선생은 이후 국내정진군 충청도반에 배속돼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했다. 이는 광복 직전까지도 치열하게 전개된 무장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 1945년 광복 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에 참여했듯 박재화 선생 역시 대한민국 국군에 몸을 담았다. 선생은 국군 제1사단 제13연대 중대장을 역임하며 군 조직 정비와 전력 강화에 기여했다.
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발전 과정에 참여한 것은 단순한 인적 계승을 넘어 임시정부의 군사적 정통성이 국군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흐름이다. 박 선생의 군 경력 또한 독립군에서 국군으로 이어진 역사적 연속성을 상징한다.
6·25전쟁, 끝까지 지킨 나라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박재화 선생은 다시 한 번 전선에 섰다. 선생은 치열한 격전지였던 파주·문산 전투에 참전해 조국 수호를 위해 싸우다 전사했다. 향년 29세.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을 위해 싸웠고 해방 후에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삶이었다. 그의 생애는 시대가 요구한 자리에서 물러섬 없이 책임을 다한 군인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를 기리는 훈장으로 선생의 항일 활동이 공식적으로 평가받았음을 의미한다. “독립정신과 호국정신을 함께 기억해야”한희원 경상북도호국보훈재단 대표이사는 “박재화 선생은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했고 광복 이후에는 국군 장교로서 나라를 지키는 길을 끝까지 걸은 분”이라며 “이번 2월의 호국영웅 선정을 통해 도민과 국민들이 우리 지역 출신 영웅의 삶과 정신을 되새기고 호국보훈의 가치를 일상 속에서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단은 ‘경북 이달의 호국영웅’ 사업을 통해 지역 출신 독립·호국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있으며 관련 홍보물 제작과 전시,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훈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다.
한 사람의 생애에 담긴 대한민국의 역사 박재화 선생의 삶은 단절이 아닌 계승의 역사였다. 임시정부의 광복군에서 대한민국 국군으로, 항일투쟁에서 6·25전쟁까지. 선생의 생애는 대한민국의 탄생과 수호의 과정을 오롯이 관통한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헌신 위에 세워졌다. 경북 2월의 호국영웅으로 선정된 박재화 선생의 삶은 독립과 호국이 결코 분리된 가치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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