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시가 마음을 맑히고 한 사람의 시가 한 도시의 표정을 바꾼다. 지난 26일, 영천시립도서관 지산홀에서 열린 영천시인협회 창립식은 바로 그 가능성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는 단순한 협회의 출범이 아니라 지역문학이 스스로의 언어로 자신을 조직하고 미래를 기획한 사건이었다.
‘언어의 조탁’에서 ‘문학의 터전’까지영천시인협회는 창립 선언문에서 “언어의 조탁을 통해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시를 통해 이웃과 소통하며, 지역 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 문장은 문학을 개인적 성취의 차원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공동체의 감각을 일구는 공공의 예술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선언문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뿌리’, ‘터전’, ‘샘물’이라는 비유는 시를 일회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흐르고 축적되는 생태계로 이해하는 관점을 드러낸다. 이는 최근 지역문학 담론에서 강조되는 ‘로컬리티의 재구성’과도 맞닿아 있다. 영천시인협회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이 아니라 지역 자체를 문학의 방법으로 사유하려는 시도를 선언하고 있다.
문학과 행정, 시민사회가 만난 자리이날 창립식에는 최기문 영천시장을 비롯해 경북도의원, 영천시의회 관계자, 여성·문화 단체장 등 지역 주요 인사들과 문인, 가족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이는 영천시인협회의 출범이 문단 내부의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 전반의 문화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최기문 시장, 삶을 시의 언어로 승화최기문 시장은 축사를 통해 “시는 시대의 마음을 기록하고 삶의 깊이를 성찰하게 하는 예술”이라며, 영천시인협회가 “지역의 역사와 자연, 그리고 삶을 시의 언어로 승화시켜 영천 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행정이 문학을 장식적 문화가 아닌 도시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초대 손아영 회장, ‘시인의 공동체’ 선언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손아영 시인은 인사말에서 “이 자리는 한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영천 문학이 한 걸음 더 성숙해지는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특히 “시는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언어이자, 지역의 역사와 정서를 지켜내는 문학의 뿌리”라는 발언은 영천시인협회가 지향하는 문학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손 회장이 제시한 협회의 비전은 네 갈래로 구조화돼 있다. 첫째, ‘시가 시민의 일상이 되는 문학도시 영천’, 둘째, 영천의 시정과 시민의 삶을 시로 기록하는 문학 아카이브 구축, 셋째, 지역을 넘어 전국과 세계로 열리는 문학 플랫폼 형성, 넷째, 신진 시인을 발굴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문학적 토양 조성 등이다.
이는 단발성 행사 중심의 협회 운영을 넘어 기록–확산–양성이라는 문학 생태계의 전 과정을 포괄하는 중장기 비전으로 평가할 만하다.
연대의 목소리, 지역을 넘어선 문학적 응답의성시낭송협회 장효식 회장은 격려사에서 영천시인협회가 “시인들의 쉼터이자 실험실이 되고, 젊은 시인에게는 용기를, 기성 시인에게는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열린 공동체”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지역문학 단체가 안고 있는 세대 단절의 문제를 넘어, 세대 간 감각의 교류를 지향하는 문학 공동체의 이상형을 제시한다.
이상숙 영천여성협회 회장, 우애자 영천시의회 전반기 부의장, 협회 고문의 축사 역시 영천시인협회의 출범을 단체 하나의 탄생이 아닌 지역 문화 지형의 변곡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했다.시와 음악이 만든 ‘문학의 현장’이날 행사에서는 문학이 언어에만 머무르지 않고 낭송과 음악을 통해 확장되는 장면이 펼쳐졌다. 김광자, 윤성호, 김미희 시인의 시낭송은 각기 다른 목소리와 리듬으로 ‘영천의 언어’를 현장에 울려 퍼지게 했다.
김창덕·정인숙 시인의 대금 연주, 김영숙·김은정·김진희 회원의 오카리나 연주는 시와 음악이 공존하는 문학적 감각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천시인협회가 장르 간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복합적 문학 감각을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이후를 향한 질문, 영천시인협회가 남긴 과제창립식 2부에서는 강원석 시인을 초청한 문학 강연과 시인·관객 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는 영천시인협회가 일방적인 발표의 장이 아니라, 질문과 토론을 통해 문학을 갱신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영천시인협회는 이 선언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실천으로 옮길 것인가? 지역의 삶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윤리와 미학을 요구하는가? ‘시가 시민의 일상’이 되기 위해 문학은 어떤 방식으로 거리와 제도를 통과해야 하는가?.영천시인협회의 창립은 이 질문들에 대한 첫 문장이다. 그리고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그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갈 용기다. 영천의 시인들이 이제, 그 문장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