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강보험 재정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의료 이용 증가로 지출 부담은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한편에서는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불법 의료기관,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사무장 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자가 타인의 면허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다. 이들은 영리 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과잉 진료, 무자격 시술, 허위·부당 청구를 일삼으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그 피해는 단순한 재정 손실을 넘어 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신뢰 훼손으로 이어진다.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0여 년간 전문 인력과 축적된 청구 데이터 분석 역량을 바탕으로 2,000여개 이상의 불법 개설 의료기관을 적발해 왔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 공단에는 직접적인 수사권이 없어, 수사기관 의뢰 이후 평균 11개월에 달하는 수사 기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불법 개설자들은 범죄 수익을 은닉하거나 폐업 후 잠적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그 결과,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된 부당 청구액 2조 8,849억원 중 실제 환수된 금액은 8.8%에 불과하다. 회수되지 못한 막대한 재정 손실은 결국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의 실패를 넘어 제도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이제는 보다 실효성 있는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불법 개설 의료기관에 한정해 수사 개시 권한을 부여하고 공단이 보유한 전문 지식과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즉각 수사에 활용한다면 수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는 범죄 수익의 사전 은닉을 차단하고 재정 환수율을 실질적으로 제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일각에서 제기되는 권한 남용 우려 역시 제도 설계를 통해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수사 대상과 범위를 사무장 병원 등 불법 개설 기관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검찰의 지휘와 통제 아래 수사 절차를 운영하며 내부 윤리 규정과 외부 감시 장치를 병행한다면 공권력 남용 가능성은 최소화할 수 있다.공단의 사무장 병원(약국) 조사권한 도입은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를 막고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며 한정된 재원을 취약계층 보호와 보장성 강화에 효과적으로 재투자하기 위한 필수적인 제도적 기반이다. 건강보험의 ‘골든타임’을 지키기 위해 이제는 공단에 조사권한 도입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영천지사 현혜정
최종편집: 2026-10-30 20:3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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