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옷 속에서 떨고 있던 유년의 시간을 거슬러 가다 보면 쓱쓱 빗질해놓은 듯 반질한 액자가 안방 앞에 걸려 있었다. 리어카 판매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잡한 금박에, 차별성과는 무관하게 대량으로 만든 흔한 액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심코 누려오던 유년의 일상을 번번이 잡는 ‘그 무엇’으로 평범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매료된 감정이 그대로 머물러 있게 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액자 속 그림은 베토벤이었다. 길거리 화가의 솜씨였지만 인물 형상화도 탁월하였고 내 발걸음을 세운 흥미로움도 놀라웠다. 곱슬머리 장발에, 성성한 눈빛에, 엷은 미소에, 빨간 목도리는 그의 특징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문학이 유년의 시간을 타고 천천히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당당하고 도도하고 거침없는 베토벤의 음악은 바깥에서 존재할 이유를 무시한 채 안으로 무차별 끌어 들였다. 광기와 열정으로 숨겨진 자아를 채찍질하여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는 실현과 구축이야 말로 온힘으로 붙들고 있는 교감이며 창조적인 기반인 것이다. 청각을 잃을 시점에, 피곤하고 이명이 들린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연약하고 소심한 자신을 뛰어넘어 이미 새로운 베토벤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었다. 관객을 숨 쉴 수조차 없게 만들어, 사실상 만족시키지 못하는 엄격한 기준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이따금 내 작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충돌로 발칙한 상상해 본다. 그래야만 문학이 접신해오니까. 방향성도 없이 비틀거리던 사춘기에 깨달은 것이지만 중량감이 없는 안방을 마주했을 때였다. 아무도 확실한 대답은 내어주지 않았다. 그때 발 딛고 서있는 위치에서 비루한 모습으로 서있는 내가 보였다. 시작은 있고 중간이 없는, 조금은 기형적인 모습의 내가 불안감으로 떨고 있었다. 안방 앞에 늘 자리한다고 믿었던, 상징적 영역속의 베토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액자도 그림도 너무 낡아서 버렸다고 했다. 절실하게 누군가에게 전달하고픈 가슴 한쪽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도발적인 성향도 그즈음이었다. (한관식 칼럼2)
최종편집: 2026-10-30 20: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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