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나의 신체가, 혹은 나의 의식이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고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분노와 적의일 수도 있고 공포와 슬픔일 수도 있고, 보편적으로 무엇인가 낯설지만 다가가는 넋두리의 극단적인 사례일지 모른다. 일테면 살아온 날의 생산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발성법으로 주위사람들의 관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려는 과정인 것도 같다. 그 점을 충분히 깨달았다면 대처능력이라든지 그에 맞는 개연성으로 훨씬 부드럽게 넘어 갈 자정력이 약해졌음이 분명하다. 혹시 지금까지 흥미 있게 읽었다면 쉽게 ‘갱년기’의 이미지를 떠올랐을 것이다. 그랬다. 지금 나는 주름진 얼굴에서 자신의 짧은 미래가 현실 속에 들이닥쳤다는 것을 인식했다. 세월 속에서 식어가는 자신의 역할이 협소해지면서, 일탈적이지 않는 수준의 최소한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계급과 영토는 이미 저만치 뒤쳐져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에, 불쑥 눈물도 맺히고 화도 난다. 온갖 네온사인이 빛나던 사춘기는 어떠했는가. 인간은 다른 어딘가에서 영향을 받게 되는 전제라면, 그 하나가 사춘기일 것이다. 내적 고민으로 찾아와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 것을 무시하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전환기로 접어들게 되는 시점이다. 더 도드라지고 더 강렬한 부딪힘에서 세태적인 측면의 양상을 띄게 된다. 균열의 조짐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일상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곧 세월이 흐른 어느 날에 찾아 올 갱년기의 예행연습이리라. 습관으로 굳어지지 않는다면 뼈와 뼈 사이에 있는 성장판을 자극하고 있다고 해도 그다지 지나치지 않다. 타인과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느 새 살아온 시간이 내 안으로 따라와 웅크리고 TV를 켜거나 신문을 뒤적거리면서 지적인 즐거움도 무뎌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덤덤해야 할 첩첩산중과 망망대해에서 아주 사소한 자극이 전달되었다. 명치끝을 꾸욱 누르는 듯한, 눈물샘이 수시로 고장 나서 일상을 어그러져버리게 했다. 이것도 갱년기의 한 선상이라면, 간혹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와 연애 한번 하고 싶다는 마음의 등장은, 결코 부자연스럽지 않다. (한관식 칼럼3)
최종편집: 2026-10-30 20: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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