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왕성했지만 순수했던 한 시절에 다방에서 부름을 받았다. 연락망이 재깍재깍 전해지지 않는 시기에, 어느 학교에 몇 학년만 알았던 노老시인은 교무실로 전화하여 나를 바꿔달라고 했다. 점잖은 말투에 달변인 노시인의 화술에 마침 교무실을 지키던 교감선생이 넘어가서 방송 스피커로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화들짝 놀란 걸음으로 교무실로 달려와 옆으로 뉘어져 있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 당시 다방의 상호는 알 수 없지만 목조계단이 있는 이층 건물로 기억 되었다. 최근에 쓴 시를 당장 가져오라는 노시인의 관심에 한껏 들떠서, 뜬금없이 조퇴를 하고 학교를 나섰다. 나는 영천고등학교 2학년이었고, 박목월선생이 세상을 떠난 그해인 1978년이었다. 이미 경북에서 노시인은 문인으로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었다. 그의 시 한 문장, 한 단어는 내가 숙지해야 할 교과서처럼 느꼈다. 웃음과 몸짓과 툭툭 던지는 농담은 경외감 속의 답습해야 할 노른자처럼 다가와 있었다. 노시인이 있는 곳에 자리를 했다는 것만으로 문예반 선배들은 무용담처럼 각색하여 들려주었다. 그런 노시인이 나를 지목했고 그것도 신성시 여겨오던 다방에서 불렀다는 것이다. 그 짜릿한 두근거림은 다방의 목조 계단 앞까지 계속 되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다른 세상으로 옮겨가기 위한 달콤한 날갯짓의 간지럼이었다. 마침내 생의 처음으로 다방의 문을 열고 빠끔히 발을 들여 놓았다.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르는 가운데서 ‘다방’은 형상을 잃지 않으려고 내안을 헤집고 다녔다. 살아있음에 대한 구체적이고 온당한 가치의 공간이 필요하다면, 이 거칠고 잔혹한 시대에서 정겹고 희망적인 메시지가 정녕 필요하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내 머리채를 당기는 다방을 추천할 것이다. 절실한 감정선을 건드려 유일한 순수성에 다가가서, 기억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존재 그 이상이리라. (한관식 칼럼4)
최종편집: 2026-10-30 20: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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