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쯤 살면서 울창한 숲을 낀 호수를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사소한 바람소리에도 정신줄이 흔들린 감성을 가졌다면 반드시 호수 안이 궁금했을 것이다. 깊고 고요한 호수 밑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당신의 의식은 놀랍도록 진일보했다고 느껴도 상관없다. 불가능을 가능의 세계로 슬며시 잠입해 들어가는 발칙한 상상의 도전이야말로 ‘유쾌한 세상’의 가운데를 점유할 수 있는 확률이 상당하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의 즐거움이, 인생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태엽으로 자리를 할 것이다. 호수주변에는 으레껏 카페에, 둘레길에, 출렁다리에, 전망대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을 것이다. 호수의 물속으로 들어가는 상상에 걸림돌이 되는 이 모든 것을 잠시 구석으로 밀어두자. 본래 상상의 요소에는 약간의 억지스러움에 대한 열정도 필요하다. 현실의 사실적 재현이 주는 쏠쏠한 재미를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도 환대받는 아가미가 꼭 필요할 것이다. 어색하고 생소한 느낌으로 당신은 턱밑을 만져 보라. 그리고 놀라지 마라. 야성과 활력의 아가미를 발견하고 전율하는 당신도 뼈대 있는 가문의 아들, 딸인 것을 동시에 인식해라. 물속으로 겸손하게 들어가든지 호들갑스럽게 들어가든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낸 윤곽선을 따라, 상상의 중심점이 되는 존재의 바닥에 발이 닿았을 때 무한히 자유로워지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사실이다.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분출은 비단 호수 속만 한정되어 있을까. 이 거칠고 잔혹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중한 몸짓은 우리의 몫이다. 오직 아가미 하나로 부딪혀 보고 싶은 마음은, 사건에 사건들이 꼬리를 무는 혼탁한 뉴스에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우리가 가진 아가미에 대한 비밀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마라. 우리만 아는 참 비밀이었으면 좋겠다. (한관식 칼럼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