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키이츠의 넋을 앗아갔던 저 불붙은 천재를 나에게도 주시옵소서. ㅡ이동하, 아웃사이더 역설 중에서ㅡ 바다가 시작되는 오롯한 길에서 잠시 서있기를 고집합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고 있는 실체들. 나무와 돌과 바다와 미상불 티끌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내 귀에 들리고 있는 파도와 갈매기와 나무의 속삭임까지 살아온 지난날의 환각과 환청이었는지 모릅니다. 내 존재에 있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마치 거울 속에 있는 풍경과 거울 밖의 풍경을 번갈아 보다가 문득 실존하는 풍경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의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를 과감하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도 없습니다. 가공할 절망으로 이미 멀어져 버린 초극의 실체는 잡히지 않는 무지개입니다. 암흑과 혼돈과 침묵의 시대에서 아름다운 액스터시, 꿈을 버리지 못했던 문학 소년에 이르기 까지 정치도 역사도 그런 거창한 관념도 무관심 안에 묶여 있습니다. 존재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공기를 축내면서 되바라지게 버티고 있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어디에 바다가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곧 바다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건강한 삶이란 참으로 병적에 가까운 존재 의식과는 무관한 것으로ㅡ 역시 따분한 평범함에 함몰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정말 그렇게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애써 문학합네 하면서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학과 오류를 범하는 일이 있더라도 일회성인 삶의 돛을 올려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가르며 항해는 계속 될 것입니다. 늘 망가져 있는 자신을 추스리기에는 바다 이상이 없습니다. 세속과 탁류에 휩쓸려 비애를 모르고 단 한 번의 참된 슬픔도 갖지 못한 채 바다 깊숙이 수장하여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점 거짓 없는 오열로 나를 만나겠습니다. 지느러미 없이 살아온 상처를 혀로 핥으며 철저히 절망하는 법을 다시 배우겠습니다. 그대여. 이 세상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라고. 실패의 천재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달그닥 거리는 자음과 모음뿐이라고. 그렇습니다. 이것도 간악한 거짓에 출발한 것일지라도 그대여, 속아주십시오. (한관식 칼럼6)
최종편집: 2026-10-30 20: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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