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다보면, 예컨대 기존 패러다임에서 약간만 벗어나도 불안해집니다. 이론과 관념과 가치관의 틀을 깨지 못해 우물 밖의 세상은 늘 남겨두었습니다. 동전만한 하늘의 크기로 만족을 느껴도 실상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창작을 하면서부터 제동이 걸립니다. 인식과 사고와 관습이 우물 안에서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큰 세상을 꿈꾸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더 넓은 세상 안에서 충돌적인 요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큰 생각의 예술이 싹을 틔울 겁니다. 축적된 소양은 이제 <스타일>을 구축하면서 탄탄하게 입지를 멀지 않아 굳히리라 믿습니다. 예외적인 난관에 부딪혀 힘들어 할 때도 서로의 소통과 격려로 이겨왔다고 자부하십시오. 항상 담론이 들끓었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자신과 다른 차이를 못마땅하게 부딪힌 의견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물론 그런 시행착오가 비온 뒤의 땅을 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예술의 이쪽과 저쪽을 맞혀주는 생산적인 막대 저울추 역할을 했으리라 봅니다. 가령 이제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라 즐겨도 될, 어느 지점에서 밋밋하게 넘어가는 몇몇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주체가 어디에 있는가, 고민하는 예술인들이 늘어가면서 긍정적이고 활기찬 영역이 넓혀졌다고 자평을 해봅니다. 독특한 분위기와 같은 자리에서 묵직하게 느껴지는 동질 의식, 서로의 피로를 챙겨주는 자생적 동료애는 ‘어디쯤’으로 가고자 하는 요령이기도 합니다. 2020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밀림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새로운 길을 내며, 먹이사냥과 생존 자체를 받아들이고 궁극적인 과제를 함께 풀어 나가려는 다짐도 확인합니다. 거기, 공감과 연민이 자리하는 햇살 좋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김밥을 펼쳐놓으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합시다. 옆구리가 찔리는 날카로운 비평도 챙기겠습니다. 싸늘한 조롱도, 어림없을 수 있는 예술적 가치에 접속하겠습니다. 진중한 고민도 열심히 범주 속에 집어넣어 깊은 통찰과 자성을 승화시키는 발판이 되겠습니다. 예술은, 얼마나 치열하게 끙끙 거렸는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부터 스타트라인의 초시계는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어느 지점에서 멈칫했을 등 뒤에서, 강렬한 동기부여처럼 들려오는 소리는 ‘째깍 째깍’ 잠깐, 그렇다고 절대 멈추지 마십시오. 이 소리에 맞춰 하나같이 전진하리라 믿습니다.
(한관식 칼럼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