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도 없는 말이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속담에도 나오지 않고 사전에도 나오지 않고 자주 쓰이지도 않는 단어는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다. 어머니께서 내 서른 즈음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사회생활이나 교회생활을 하면서 속이 상한 일을 집에 와서 얘기하면 ‘사람이 어찌 같을 수가 있나. 생각과 보는 것이 다르고 판단하는 것이 다르지 않겠니. 천천만천 구만천이다’고 하셨다. 당시로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였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내 기억으로 초등학생이었는지 중학생이었는지 어렴풋 하지만 어렵게 살았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주인이 살고 잇는 큰 집에 조선시대로 치면 오두막집이라 불러도 될 거기에 곁달린 아랫채에 살았는데 여름이면 천정에서 비가 세고 겨울이면 천막을 가로막은 집이었다. 한 여름 태양빛이 내리쬘 때 어머니가 집을 나서니 나이 많은 어르신이 초등학교 앞에 기진맥진 해 쓰러져 있었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약한 몸이었지만 어찌어찌 부축해 집안에 모셔 냉수를 우선 들이키게 하셨고 우리 식구 저녁 먹을 국수를 급히 말아 대접했다. 그렇게 어르신은 댁으로 가셨고 시간이 지나 가을쯤인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 한분이 찾아왔다. 자기 모친이 어떤 분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는데 이제야 찾아왔다며 감사하다와 죄송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사회적기업이 태동하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회사를 다니다 독립한 부부가 회사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기업지원 프로그램이 시스템화 있어서 거기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과 인맥을 많이 가진 사람이 유리한 시대였다. 어렵게 독립한 이들이 첫 걸음은 뗏지만 매월 지급해야 하는 인건비 부담은 경영을 해 본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로 매월 급여일이 다가 오면 엄청난 압박이 가슴을 짓 누리게 된다. 다행이 아는 인맥을 동원해 인건비 지원을 받아 어려운 시기를 지날 수 있었던 이들 부부는 매년 찾아와 감사했다. 지금은 든든한 기업으로 성장해 보기만 해도 흐믓하다.이즈음에 갑자기 두가지 일이 떠올려지는 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정말 어렵게 도움을 준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자리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아려지는 것은 왜 일까?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심정과 같이 언제 봤느냐는 그렇게 선택을 하는 것을 보면서 아주 작은 친절에 감사하며 찾아온 이들과 오버랩 되는 것은 어머니께서 가르치신 천천만천 구만천을 떠올리며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나와 생각이 다르고 판단을 다르게 할 수 있겠구나!”면서 이 현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이해하고 있는 도덕적 관념은 “아무리 한 쩐(?)이 급해도, 아무리 권세)?)가 세다 해도 해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섭섭함을 감출 수는 없는 생각이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을 잘 알고 있는 A모씨는 “평소 가깝게 두텁게 깊게 우정을 나누었던 이가 순간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다른 길(?)을 걷는 것을 보면서 인생을 배우게 된다”면서 “그게 그렇게 좋은가? 그게 그렇게 급했나? 평생 이 지역에 살아야 할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볼 때 인생 잘못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